루카스 합리적 기대 가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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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경기를 살리려고 돈을 풀었는데, 왜 효과는 없고 물가만 오를까요? 반대로, 물가를 잡으려고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왜 경기는 예상보다 더 나빠질까요? 1970년대, 전 세계 경제학자들을 괴롭혔던 이 질문에 한 젊은 경제학자가 혁명적인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바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루카스의 '합리적 기대 가설'입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합리적 기대의 등장

1970년대 이전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주로 과거의 경험에 의존해 미래를 예측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적응적 기대'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작년 물가가 5% 올랐다면, 사람들은 '올해도 비슷하게 오르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식이죠. 정부는 이런 사람들의 느린 반응을 이용해 정책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높은 실업률과 높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치자 이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정부가 돈을 풀어도 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물가만 폭등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죠.

이때 로버트 루카스는 아주 단순하지만 강력한 아이디어를 제시합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과거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총동원해 미래를 합리적으로 예측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합리적 기대 가설'입니다. 사람들은 정부의 정책 발표, 뉴스, 시장의 분위기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뜻이죠.

정부 정책이 효과를 잃는 이유: 루카스 비판과 정책 무력성

합리적 기대 가설은 정부 정책에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1. 루카스 비판: "정책이 발표되는 순간, 게임의 규칙이 바뀐다"

과거 데이터를 보면 "정부가 돈을 1% 풀면, 경제가 0.5% 성장했다"는 결과가 있었다고 해봅시다. 이 데이터를 믿고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돈을 대규모로 풀겠다!"고 발표하면 어떻게 될까요?

루카스는 이 발표를 듣는 순간,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기업들은 '돈이 풀리면 원자재 값과 인건비가 오르겠구나'라고 예상하고 미리 상품 가격을 올립니다. 노동자들은 '물가가 오를 테니 월급을 더 올려달라'고 요구하죠. 결국 정부가 푼 돈은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물가만 올리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정책을 발표하는 순간, 그 정책의 효과를 계산했던 과거의 데이터는 쓸모없게 되는 것입니다.

2. 정책 무력성 명제: "예상된 정책은 아무 효과가 없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정책 무력성 명제'에 이릅니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사용할지 사람들이 미리 '예상'할 수 있다면, 그 정책은 아무런 효과를 낼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경기 침체 때마다 항상 똑같은 방식으로 돈을 푸는 정책을 쓴다면, 사람들은 "아, 또 돈 풀겠네"라고 예측하고 미리 가격을 올려버립니다. 결국 정부의 정책은 시장의 빠른 반응에 의해 무력화됩니다.

물론, 시장의 예상을 완전히 깨는 '깜짝' 정책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깜짝쇼'를 자주 하면 정부에 대한 신뢰만 떨어져 장기적으로는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습니다.

정말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합리적일까?

물론 합리적 기대 가설에도 비판이 따릅니다. "모든 사람이 경제학자처럼 모든 정보를 분석하고 완벽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죠.

노벨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은 '제한된 합리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인간은 정보와 인지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최고의 선택'보다는 '만족스러운 선택'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점심 메뉴를 고를 때 도시의 모든 식당을 분석하지 않고, 그냥 가봤던 곳이나 주변 평이 좋은 곳 중에서 적당히 고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현실의 사람들은 완벽하게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루카스의 이론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중요한 통찰을 주었습니다.

오늘날의 시사점: 중앙은행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 이유

합리적 기대 가설이 현대 경제에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바로 '기대 관리'와 '신뢰'의 중요성입니다. 특히 중앙은행(한국은행이나 미국 연준 등)의 통화정책에서 이는 핵심적인 원칙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앞으로 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면, 그 기대가 실제로 물가 상승을 부릅니다. 이런 기대를 잠재우기 위해 중앙은행은 "어떤 일이 있어도 물가를 잡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고, 그 약속을 지켜 대중의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신뢰받는 중앙은행의 정책 발표는 사람들의 기대를 안정시켜 더 적은 비용으로 물가를 잡을 수 있게 해줍니다.

1980년대 초, 미국의 폴 볼커 연준 의장이 살인적인 금리 인상으로 극심한 경기 침체를 감수하면서까지 인플레이션을 잡았던 것은, 바로 이 '신뢰'를 되찾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연준은 인플레이션과 싸운다"는 신뢰를 시장에 심어주었고, 이는 이후 수십 년간 미국 경제 안정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로버트 루카스의 합리적 기대 가설은 경제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이제 정책 입안자들은 '어떤 정책을 쓸까'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책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할까'를 함께 고민해야만 합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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