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차 반도체 설계자 솔직한 연봉 이야기
목차
"요즘 신입 연봉이 그렇다고?" 14년차 엔지니어가 느낀 격세지감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로 일한 지 어느덧 14년 차가 되었다. 최근 오랜만에 업계 선후배들과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연봉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회사를 위주로 경력을 쌓아왔다. 그래서 업계 연봉이 이렇게까지 높아졌는지 피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최근 몇 년간 채용 공고를 낼 때마다 '사람 구하기 참 어렵다'고 느끼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나의 첫 연봉은 3,200만 원이었다. 그리고 14년이 흐른 지금, 나는 겨우 연봉 1억 원을 넘겼다. 스스로는 '그래도 3배 가까이 올랐으니 꽤 많이 받는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후배들에게 들은 업계 분위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대체 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14년 차 '선배'의 시각으로, 그리고 솔직한 내 경험을 바탕으로 요즘 반도체 설계자 연봉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시작점부터 다르다: "라떼는 3200이었는데..."
내가 가장 놀란 부분은 바로 '신입' 연봉이었다. 내가 3,200만 원으로 시작했던 그 자리가, 지금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 기준으로 5,300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물론 이게 다가 아니다. 이 5,300만 원은 '기본급'일 뿐, 진짜는 '성과급'이다. 소위 '영끌'이라고 부르는, 성과급까지 모두 합친 총 보상은 신입이라도 1억 원을 넘기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반도체 수요는 폭발했고, 시장을 선도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연봉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 두 거대 기업이 기준점을 확 높여버리니, LX세미콘이나 DB하이텍 같은 중견 팹리스 기업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신입 초봉을 4,000만 원 후반에서 5,000만 원대까지 맞출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내가 몸담은 회사처럼 작은 규모의 팹리스들은 어떨까? 당연히 그만한 현금을 맞춰주기 어렵다. '사람 구하기 어렵다'는 나의 푸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다.
진짜 연봉은 따로 있다: 달콤하고도 무서운 '성과급'
경력직으로 이직하는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봉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성과급'이다. 특히 대기업은 이 성과급 비중이 상상을 초월한다.
삼성전자 DS부문은 TAI(반기별 성과급)와 OPI(연 1회 초과이익성과급)가 있고, SK하이닉스는 PI(반기별 생산성격려금)와 PS(연 1회 초과이익분배금)가 있다.
이게 왜 무섭냐면, 변동성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SK하이닉스가 HBM으로 엄청난 호황을 누릴 때는 PS로 기본급의 1,000% 이상(연봉의 50% 이상)을 받기도 한다. 이럴 때 입사한 엔지니어는 그야말로 '돈벼락'을 맞는다.
하지만 반대로 메모리 불황기가 닥치면? 성과급은 0%가 될 수도 있다. 연봉 1억 5천을 받던 사람이 다음 해에 8천만 원을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평균 연봉 1억 2천'이라는 기사는 사실 이런 최대 성과급이 포함된 수치라, 현실과는 괴리가 있을 수 있다.
내가 밟아온 길 vs 요즘 후배들의 길
그렇다면 경력에 따른 연봉 상승은 어떨까? 내 경험과 요즘 들려오는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이렇다.
신입 (0~3년차): 이미 억대 연봉의 시작
앞서 말했듯, 대기업 기준 기본급 5,000만 원대에 성과급을 합쳐 6,500만 원에서 최대 1억 1,000만 원까지도 가능하다. 시작부터가 다르다.
5~10년차 (대리~과장급): 진짜 몸값이 갈리는 시기
이때부터는 실력으로 말한다. 팀의 핵심 인력이자 실무의 '허리'다. 이직도 가장 활발하다.
대기업에서 성과를 잘 낸 5년차는 성과급 포함 8,000만 원에서 1억 2,000만 원 이상을 받는다. 10년차쯤 되면 기본급만 1억 원에 육박하고, 총 보상은 1억 5,000만 원에서 2억 원 사이를 오간다.
내가 14년 차에 겨우 1억 원을 넘긴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격차가 크다. 물론 나는 상대적으로 연봉 상승률이 낮은 중소기업 위주로 다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에 다니는 내 동기나 후배들은 이미 이 정도 수준을 받고 있었다.
최근에는 AI 칩 설계처럼 수요가 폭증하는 분야에서 10년차 핵심 팀이 '법인 계약' 형태로 2억 5,000만 원 수준의 연봉을 받고 통째로 이직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들려온다. 시장이 그야말로 미쳐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15년차 이상 (나의 위치): 리더 혹은 스페셜리스트
내 나이대, 즉 15년 차 이상의 시니어들은 기술 리더(팀장, 수석)로 간다. 이들의 총 보상은 2억 원에서 3억 원 이상까지도 형성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임원이 되면 3억 원을 훌쩍 넘는,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대기업 기준이다. 나처럼 중소기업에서 꾸준히 일하며 리더 역할을 하는 엔지니어들은 1억 원 초반대에 머무는 경우도 많다.
요약: 경력별 연봉 테이블 (대기업, 성과급 포함 추정)
| 경력 단계 | 연차 | 예상 총 보상 범위 | 비고 (14년차 선배의 생각) |
|---|---|---|---|
| 신입 | 0-3년 | 6,500만 ~ 1억 1,000만 원 | 시작부터 나보다 높을 수 있다니... 격세지감이다. |
| 중견 | 5-10년 | 8,000만 ~ 1억 5,000만 원+ | 가장 이직이 활발하고, 실력에 따라 연봉이 급등하는 시기. |
| 시니어/전문가 | 10-15년 | 1억 5,000만 ~ 2억 5,000만 원+ | 나는 이 구간의 하단에 겨우 턱걸이했다. 대기업 동기들은... |
| 리더 | 15년+ | 2억 ~ 3억 원+ | 임원이 되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나의 길, 그리고 다른 길
돌이켜보면 나는 '안정성'과 '워라밸'을 택한 대신, '연봉'은 어느 정도 포기한 셈이다. 내가 다닌 작은 회사들은 대기업처럼 엄청난 성과급은 없었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연봉이 깎일 걱정은 덜했다.
반면 요즘 후배들이 많이 도전하는 스타트업은 또 다른 게임이다. 신입이라도 3,000만 원대 연봉을 받을 수 있지만, 대신 '스톡옵션'이라는 로또를 받는다. 회사가 성공적으로 IPO(상장)라도 한다면, 14년간 꼬박 모은 내 연봉을 단숨에 뛰어넘는 부를 거머쥘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위험도 크다.
14년 차의 마무리 생각
그날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신입 때 3,200만 원을 받고 설레던 내가, 14년 만에 1억 원을 받게 된 것은 분명 큰 성과다. 하지만 AI와 글로벌 경쟁이 불붙인 지금의 반도체 시장은, 내가 걸어온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후배 엔지니어들에게는 정말 엄청난 기회의 시대가 열린 것이 맞다. 하지만 동시에 화려한 '성과급' 뒤에 숨겨진 '변동성'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이 모든 연봉 상승은 결국 '실력 있는' 설계 엔지니어가 극도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14년이 지난 지금도 결론은 하나다. 꾸준히 공부하고, 자기 몸값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 14년 뒤에 또다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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