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에서 미국 대두 없는 중국, 누가 진짜 손해일까?
목차
미중 무역전쟁의 포화 속에서 가장 상징적인 무기는 단연 '대두'였다. 세계 최대 대두 수입국인 중국이 최대 생산국 중 하나인 미국을 향해 수입 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을 때, 많은 이들은 단순한 손익을 예상했다. 미국 농가는 막대한 피해를 보고, 중국은 더 비싼 값에 대두를 사 와야 하니 양쪽 모두 손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두 전쟁의 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단기적 손실과 장기적 이익이 교차하는 복잡한 손익계산서가 드러난다. 과연 진짜 손해를 본 쪽은 누구일까?
명백한 상처를 입은 미국 농가
가장 즉각적이고 명백한 타격을 입은 쪽은 미국이다. 중국의 수입 중단 조치는 미국 농업계, 특히 중서부 '팜 벨트(Farm Belt)'에 그야말로 피바람을 몰고 왔다. 중국은 미국 대두 수출의 약 60%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구매자였기에, 이 시장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자 미국 내 대두 가격은 폭락하고 재고는 산처럼 쌓였다.
2018년 무역전쟁 당시 미국 농가는 약 270억 달러의 매출 손실을 겪었고, 그중 70% 이상이 대두에서 발생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1999년 이래 처음으로 중국이 미국산 가을 수확 대두를 단 한 건도 구매 예약하지 않는 전례 없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미국 정부는 수백억 달러 규모의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해 성난 농심을 달래야 했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손실을 넘어, 미국산 농산물이란 브랜드의 신뢰도와 시장 지배력에 깊은 상처를 남긴 사건이었다.
남미의 부상과 재편된 세계 시장
미국이 주춤하는 사이, 그 공백은 남미 국가들이 무섭게 파고들었다. 특히 브라질은 이 무역전쟁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르며 세계 1위 대두 수출국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중국은 브라질산 대두 수입을 폭발적으로 늘렸고, 한때 중국 전체 대두 수입량의 90%를 브라질산이 차지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부의 일시적 수출세 유예 조치에 힘입어 단기간에 막대한 물량을 중국에 판매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아르헨티나는 미국의 금융 지원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지원한 돈이 경쟁국의 수출을 도와 자국 농가의 등에 비수를 꽂은 셈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중국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심지어 우루과이와도 새로운 물류망과 장기 공급 계약을 구축하며 공급망 자체를 재편했다. 이제 미국은 중국 시장에서 최우선 공급자가 아닌,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위상이 격하되었다. 한번 빼앗긴 시장 주도권을 되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중국은 정말 비싼 값을 치렀을까?
표면적으로 보면 중국은 미국산보다 물류비가 비싸고 품질이 다소 떨어지는 브라질산 대두를 더 많이 사야 했다. 이는 분명한 비용 상승 요인이다. 실제로 수입선 전환 초기, 중국 내 대두박(돼지 사료 원료) 가격이 출렁이며 양돈 농가에 부담을 주었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그대로 감내하지 않았다. 첫째, '총상륙가치'라는 더 큰 그림에서 접근했다. 약간의 품질 저하나 물류비 상승은 미국의 고율 관세와 지정학적 리스크에 비하면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최고 품질의 제품이 아닌, '충분히 좋은' 제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실용주의적 선택을 했다.
둘째, 강력한 내부 정책으로 충격을 흡수했다. 중국 정부는 '사료 내 대두박 감축 계획'을 통해 아예 대두의 총수요를 줄여버렸다. 이는 사료 효율을 높여 산업 체질을 개선하는 동시에,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가격 상승 압력을 완화하는 다목적 카드였다. 또한, 국가 비축 물량을 활용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다른 식물성 기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며 식용유 가격 등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 외부의 충격을 내부의 혁신 동력으로 전환한 셈이다.
단기 손실과 장기 이익, 최종 손익계산서
결론적으로 미중 대두 전쟁의 손익계산서는 단기적 관점과 장기적 관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미국: 단기적으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고, 장기적으로는 세계 최대 시장의 확고한 공급자 지위를 상실했다. 이는 회복하기 어려운 구조적 손실이다.
중국: 단기적으로 일부 가격 변동성과 비용 상승을 겪었지만, 이를 내부 정책으로 충분히 관리하고 흡수했다.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 이익이다. 중국은 오랫동안 숙원이었던 '특정 국가(미국)에 대한 과도한 식량 의존'이라는 전략적 취약점을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의 무역전쟁이 오히려 중국에게 공급망 다변화라는 목표를 달성할 완벽한 명분을 제공해 준 역설적인 결과를 낳은 것이다.
결국 이 전쟁에서 더 큰 상처를 입고 더 많은 것을 잃은 쪽은 미국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단기적 출혈을 감수하고 식량 안보와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더 큰 실리를 챙겼다. 대두를 둘러싼 이 거대한 힘겨루기는 단순한 무역 분쟁을 넘어, 세계 농산물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글로벌 공급망의 미래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