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비트코인 채굴 풀이 대부분의 해쉬를 점유해도 비트코인 조작이 일어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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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신뢰의 기반, 소수 채굴자가 조작할 수 없는 이유
최근 비트코인 채굴(mining)이 파운드리 USA, 앤트풀 등 소수의 대형 마이닝 풀에 집중되는 현상을 보며 많은 사람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만약 이 거대 채굴자들이 서로 담합한다면, 비트코인 장부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참고로 2025년 두 채굴풀의 총 해시레이트 점유율은 40~50%이며, 50%를 넘는 경우도 종종있다.
비트코인에 대한 신뢰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선의에 기대지 않는다. 그 신뢰는 하나의 장치가 아닌, 겹겹이 쌓인 '다층적 방어(defense-in-depth)' 전략에서 비롯된다. 이 시스템은 누군가 악의적인 행동을 시도할 때, 그 시도가 반드시 실패하거나 혹은 막대한 손해로 귀결되도록 설계되었다.
51% 공격의 오해와 진실
흔히 '51% 공격'이라 불리는 위협은 네트워크 전체 연산 능력(해시레이트)의 과반을 장악하는 상황을 말한다. 과반의 힘을 가진 공격자는 이론적으로 특정 행위를 할 수 있다.
공격자가 할 수 있는 일
51% 공격의 주된 목적은 '이중지불(Double-Spending)'이다. 공격자는 먼저 자신의 비트코인을 거래소 등에서 매도하는 정상 거래를 수행한다. 그 후, 자신의 막대한 해시파워를 이용해 이 거래가 포함되지 않은 '가짜' 블록체인을 비밀리에 만든다. 이 가짜 체인이 기존의 정직한 체인보다 길어지는 순간 네트워크에 전파하면, 비트코인 프로토콜은 '가장 긴 체인'을 진짜로 인정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공격자는 이미 사용했던 코인을 다시 되찾아 이중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특정 주소의 거래를 의도적으로 블록에 포함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거래를 검열하거나 네트워크를 방해할 수도 있다.
공격자가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51% 공격이 만능은 아니다. 그 힘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 타인의 자금 탈취: 공격자는 절대 다른 사람의 지갑에서 비트코인을 훔칠 수 없다. 비트코인 거래는 오직 해당 지갑의 개인 키(private key)로만 서명할 수 있으며, 51%의 해시파워로도 이 암호학적 서명을 위조할 수는 없다.
- 총발행량 변경: 비트코인의 총발행량 2,100만 개 제한은 시스템의 근본 규칙이다. 공격자가 이 규칙을 어기고 자신에게 더 많은 보상을 지급하는 블록을 만들어도, 전 세계 수만 개의 노드(node)가 이 블록을 즉시 거부한다.
- 오래된 거래의 번복: 이중지불 공격은 오직 자신이 방금 수행한 '최근' 거래에만 한정된다. 블록체인에 깊숙이 묻힌, 즉 수많은 확인을 거친 과거의 거래를 되돌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첫 번째 방어벽, 경제적 비합리성
설령 51% 공격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이를 실행하지 못하게 막는 첫 번째 방어벽은 압도적인 '경제적 비합리성'이다.
최근 분석에 따르면,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대한 51% 공격을 감행하는 데 필요한 최신 채굴 장비(ASIC)를 확보하는 데에만 약 200억 달러(약 27조 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자본이 필요하다. 여기에 막대한 운영 전력비까지 더해진다.
더 중요한 것은 게임 이론이다. 공격자가 수십조 원을 투자해 네트워크를 성공적으로 공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비트코인 시스템의 신뢰는 붕괴하고 그 가치는 폭락할 것이다. 이는 공격자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구매한 채굴 장비와 그동안 채굴한 비트코인의 가치를 스스로 휴지 조각으로 만드는 행위다. 즉, 51% 공격은 자신이 막대한 돈을 들여 지은 공장을 스스로 불태우는 것과 같은 경제적 자살 행위다.
두 번째 방어벽, 기술적 요새
비트코인은 작업증명(Proof-of-Work)이라는 방식을 통해 디지털 기록에 물리적인 '비용(전기)'을 결부시킨다. 블록체인은 이전 블록의 암호화된 값(해시)을 다음 블록이 물고 있는 구조로, 시간이 지날수록 이 사슬은 더 길고 무거워진다.
만약 공격자가 과거의 특정 블록을 조작하려면, 그 블록뿐만 아니라 그 뒤에 연결된 모든 블록을 순서대로 다시 계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격자는 전 세계의 정직한 네트워크 전체가 새로운 블록을 추가하는 속도마저 앞질러야 한다. 이는 정직한 네트워크를 상대로 시간을 되돌리는 싸움을 벌이는 것과 같으며, 누적된 작업량이 많아질수록 이는 계산적으로 불가능한 과제가 된다.
세 번째 방어벽, 보이지 않는 수호자들
해시레이트가 네트워크 권력의 전부는 아니다. 비트코인 권력 구조는 채굴자와 '풀 노드(Full Node)'로 분리되어 있다. 풀 노드는 전 세계에 분산되어 비트코인 소프트웨어를 실행하며, 모든 거래와 블록을 독립적으로 검증하는 컴퓨터다.
채굴자가 막대한 연산력으로 새로운 블록을 '제안'할 권리를 가진다면, 풀 노드는 이 블록이 유효한지 '승인'할 권리를 갖는다. 만약 네트워크의 99%를 장악한 채굴자가 총발행량 2,100만 개를 어기고 자신에게 100 BTC를 지급하는 블록을 만들더라도, 전 세계 수만 개의 풀 노드는 "이 블록은 규칙 위반"이라 판정하고 즉시 거부한다. 채굴자는 규칙 안에서만 행동할 수 있으며, 그 규칙을 강제하는 주체는 바로 이 분산된 풀 노드 네트워크다.
네 번째 방어벽, 사회적 면역 체계
이론적 방어벽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을 증명한 역사적 사건이 있다. 2014년, 'GHash.io'라는 마이닝 풀이 의도치 않게 네트워크 해시레이트의 51%를 넘어서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론적으로 공격이 가능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은 정반대였다. 비트코인의 가치 붕괴를 우려한 커뮤니티가 즉각 반응했다. GHash.io에 해시레이트를 제공하던 수많은 개별 채굴자가 자발적으로 풀을 이탈하여 다른 소규모 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주요 참여 기업들도 중앙화 위험을 줄이기 위해 협력했다. 결국 GHash.io 스스로도 점유율을 40% 이하로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비트코인 생태계가 코드뿐만 아니라, 참여자들의 '사회적 합의'라는 강력한 면역 체계에 의해 보호됨을 보여준다. 채굴 풀 운영자가 악의적인 공격을 시도하면, 그에게 힘을 빌려주는 개별 채굴자들이 자신의 자산 가치를 지키기 위해 즉시 그를 버리고 떠날 것이다.
신뢰가 아닌 검증의 시스템
비트코인 채굴이 소수 풀에 집중되는 현상은 분명 경계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이것이 곧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트코인의 보안은 특정 주체를 '신뢰'하는 데 기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비트코인은 그 누구도 신뢰할 필요가 없도록,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시스템 전체의 정직성이 유지되도록 설계된 '검증'의 시스템이다. 우리가 비트코인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불신을 전제로 설계된 견고한 다층적 방어 시스템 그 자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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