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 코인 시장을 키우려는 미국의 목적

목차

스테이블 코인 시장을 키우려는 미국의 목적

최근 몇 년간 미국 정부와 의회는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규제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테라-루나 사태와 같은 뱅크런을 방지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이 크다. 하지만 이 규제의 방향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시장 통제를 넘어 21세기 디지털 금융 시대에도 달러 패권을 공고히 하려는 미국의 거대한 전략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스테이블 코인 시장을 억압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한다. 그 목적은 명확하다.

오해의 시작 채권과 스테이블 코인

흔히 발생하는 오해 중 하나는, 미국 정부가 막대한 재정 적자로 인해 발행한 국채를 소화하기 어렵자,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라는 새로운 구매자를 강제로 끌어들이려 한다는 시각이다. 즉, '채권을 팔기 위해' 스테이블 코인 규제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인과관계가 완전히 뒤바뀐 해석이다.

수요가 발행을 결정한다

스테이블 코인은 발행사가 원한다고 해서 무작정 찍어낼 수 있는 화폐가 아니다. USDT(테더)나 USDC(서클) 같은 주요 스테이블 코인은 1:1 준비금 원칙을 따른다.

시장에서 100억 달러 규모의 USDC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면, 사용자들은 발행사인 서클(Circle)에 실제 현금 100억 달러(USD)를 입금해야 한다. 서클은 그 100억 달러를 받는 즉시, 그에 상응하는 100억 USDC를 발행(Minting)하여 사용자에게 전달한다. 즉, 모든 스테이블 코인은 실제 달러의 입금을 전제로 탄생한다.

자동화된 달러 수요 창출 시스템

미국이 주목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발행사들은 사용자로부터 받은 그 막대한 현금 달러를 금고에 잠재워 두지 않는다.

준비금은 어디로 가는가

발행사들은 이자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현금을 보유하는 대신, 가장 안전하면서도 유동성이 높은 자산, 즉 미국 단기 국채(T-bills)를 매입하여 준비금으로 보유한다. 이는 스테이블 코인의 1달러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Pegging)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자, 동시에 발행사에게 수익을 안겨주는 방법이다.

인과관계의 재정립

따라서 올바른 인과관계는 다음과 같다.

  1.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결제를 위한 스테이블 코인 수요가 증가한다.
  2. 사용자들은 스테이블 코인을 얻기 위해 실제 달러(USD)를 매입한다.
  3. 발행사들은 입금된 달러로 1:1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한다.
  4. 발행사들은 그 달러 준비금으로 미국 국채를 매입한다.

결론적으로, 미국 정부가 채권을 사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전 세계가 '디지털 달러(스테이블 코인)'를 원하면 원할수록, 그 수요는 자동으로 미국 국채 매입 수요로 전환된다. 미국은 스테이블 코인 규제를 통해 "준비금은 반드시 미국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으로 보유해야 한다"는 규칙만 확립하면 되는 것이다.

스테이블 코인이 달러 가치를 떨어뜨릴까

일각에서는 스테이블 코인이 대량 발행되면 달러 가치가 희석되거나 페깅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이는 앞서 설명한 메커니즘을 고려할 때 사실과 정반대다.

페깅은 무너지지 않는다

미국식 규제 하에서 스테이블 코인은 1:1로 실제 달러 자산(국채)에 의해 완벽하게 뒷받침된다. 1000억 달러의 USDC가 유통된다면, 이는 1000억 달러의 미국 국채가 금고에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페깅이 무너질 이유가 없다.

오히려 달러는 강해진다

더 중요한 현상은 따로 있다. 만약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1000억 달러 규모의 스테이블 코인 수요가 폭발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들은 스테이블 코인을 사기 위해 먼저 자국 화폐(유로, 엔, 원화)를 팔아서 '실제 미국 달러(USD)'를 구해야 한다. 이는 외환 시장에서 달러 매수 압력으로 작용하며, 다른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강달러' 현상을 유발한다.

스테이블 코인(USDC)과 실제 달러(USD)는 1:1로 가치가 고정되어 있으므로, 이 둘은 다른 모든 통화 대비 가치가 '함께' 상승하게 된다. 즉, 스테이블 코인 시장의 성장은 달러 가치 하락이 아닌, 오히려 달러 패권의 강화로 이어진다.

CBDC가 아닌 스테이블 코인을 선택한 이유

미국 연준(Fed)이 직접 '디지털 달러(CBDC)'를 발행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도 나온다. 하지만 미국은 CBDC 발행에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그 대신 민간 스테이블 코인을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공적 부채와 사적 부채

CBDC와 스테이블 코인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공적 부채(화폐)'인 반면, 스테이블 코인은 민간 기업이 발행하는 '사적 부채(IOU)'다.

구분 CBDC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스테이블 코인 (민간 발행)
발행 주체 중앙은행 (Fed) 민간 기업 (Circle, Tether 등)
법적 성격 공적 부채 (법정화폐) 사적 부채 (금융 상품/전자화폐)
신용 위험 없음 (국가 보증) 발행사 파산 위험 존재
미국 입장 금융 시스템 전면 개편 필요 (신중) 민간 혁신 활용 (신속)

연준이 CBDC를 직접 발행하면, 시중은행의 예금이 CBDC로 대거 이동하면서 기존 은행 시스템이 붕괴될 위험(디지털 뱅크런) 등 예측 불가능한 부작용이 크다.

민간의 혁신과 달러 패권

미국은 더 영리한 방법을 선택했다. 중앙은행이 직접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민간 기업들이 자유롭게 혁신하고 경쟁하며 전 세계에 '디지털 달러'를 보급하도록 장려한다.

그리고 정부는 단 하나의 규칙만 제시한다. "좋다. 하지만 그 모든 디지털 달러는 1:1로 미국 국채를 통해 보증되어야 한다."

이는 미국 입장에서 민간의 혁신 속도와 자본을 활용하면서도, 그 과실(달러 수요 및 국채 수요 증가)은 국가가 가져가는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다.

21세기형 디지털 달러 패권

미국의 스테이블 코인 규제 목적은 명확하다. 이는 암호화폐 시장을 억누르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달러'라는 꼬리표가 붙은 민간 디지털 화폐를 길들여, 21세기 디지털 경제 시대에도 전 세계가 달러 시스템에 계속 의존하도록 만드는 고도의 전략이다.

스테이블 코인 시장의 성장은 곧 미국 달러와 미국 국채에 대한 전 세계적인 수요의 자동화된 증가를 의미한다. 이는 달러 패권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패권을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하고 강화하는 핵심 수단이 될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