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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전기 요율이 가정용 전기를 넘어섰다는 것은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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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은 전기를 많이 쓰니까 할인을 받아서 가정용보다 훨씬 싸게 쓴다더라."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정설처럼 퍼져 있던 이야기다. 실제로 과거에는 수출 경쟁력을 위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원가 수준 혹은 그 이하로 저렴하게 공급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24년 현재, 이 이야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제는 오히려 기업이 가정보다 더 비싼 전기를 쓰는 시대가 도래했다.

단순히 명목상의 요금표만 바뀐 것이 아니다. 기업들이 알음알음 챙겨가던 각종 할인 혜택까지 사라지면서, 대한민국 전력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뒤집혔다. 오늘은 대기업 전기요금 역전 현상의 실체와 그 속에 숨겨진 '사라진 할인'의 행방을 짚어본다.

산업용 전기만 콕 집어 올린 10월의 요금 조정

지난 2024년 10월, 정부와 한국전력공사는 전기요금 조정안을 발표했다. 이번 조정의 핵심은 '타기팅(Targeting)'이었다. 서민 경제와 자영업자의 부담을 고려해 주택용과 일반용 요금은 전면 동결했다. 반면,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대기업(산업용 '을')의 요금은 무려 10.2%나 인상했다.

구분 대상 인상률
주택용 일반 가정 0.0% (동결)
일반용 상점, 자영업 0.0% (동결)
산업용(갑) 중소기업 5.2%
산업용(을) 대기업, 중견기업 10.2%
2024년 10월 전기요금 인상 내역 비교

전체 전력 소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기업에게 명확한 가격 신호를 주어 에너지 효율화를 강제하겠다는 의도다. 이로 인해 과거 산업용 전기가 주택용보다 저렴했던 '원가주의' 논리는 깨졌고, 산업용 수익으로 한전의 적자를 메우는 구조가 굳어졌다.

할인 다 받고도 가정용보다 비싸다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진다. "표면적인 요금만 비싸고, 실제로는 기업들이 각종 할인이나 환급을 받아서 싸게 쓰는 것 아닌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이를 확인하기 가장 좋은 지표는 '판매단가'다. 판매단가는 한전이 전기를 팔아 번 총수익을 판매량으로 나눈 값으로, 모든 할인 혜택을 다 차감한 후 기업이 실제로 지불하는 최종 단가를 의미한다.

팩트 체크: 판매단가 역전

2023년 기준 한전 통계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의 평균 판매단가는 kWh당 153.7원으로, 주택용의 149.8원을 이미 넘어섰다. 2024년 10월의 추가 인상분까지 반영하면 이 격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즉, 할인을 다 적용받고도 기업이 더 비싼 요금을 내고 있다는 뜻이다.

그 많던 할인은 어디로 갔을까

그렇다면 기업들의 요금 고지서를 가볍게 해주던 그 '할인 제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핵심은 '제도의 일몰'과 '성격의 변화'다.

사라진 꿀단지, ESS 특례 할인

과거 대기업 공장의 전기요금 절감 일등 공신은 '에너지저장장치(ESS) 특례 요금제'였다. 심야의 싼 전기를 배터리에 담아뒀다가 낮에 쓰는 것만으로도 기본요금과 사용료를 대폭 깎아주던 파격적인 제도였다. 하지만 이 제도는 2024년을 기점으로 사실상 종료되었다. 이제 ESS는 요금을 아껴주는 효자가 아니라, 유지비만 드는 설비 혹은 비상 전원용으로 남게 되었다.

공짜 점심은 없다, 수요반응(DR) 제도

흔히 '페이백'이라고 오해하는 수요반응(DR) 제도 역시 성격이 다르다. 이것은 단순한 할인이 아니다. 전력 수급 위기 시 공장 가동을 멈추거나 조명을 끄는 등 '고통'을 감내한 대가로 받는 보상금이다.

반도체나 제철소 용광로처럼 24시간 1초도 멈추면 안 되는 공정을 가진 대기업들은 사실상 참여가 불가능하다. 설사 참여하더라도 이는 생산 차질이라는 리스크를 건 '노동의 대가'이지, 거저 주는 요금 할인이 아니다.

비용의 쓰나미, 그리고 기업의 과제

이번 인상으로 삼성전자는 연간 약 3천억 원에서 4천억 원, SK하이닉스는 1천억 원 이상의 전기료를 더 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요구하는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달성을 위해 비싼 재생에너지까지 사야 하는 상황에서, 기본 전기료 인상은 기업들에게 '이중고'로 다가오고 있다.

독일과 같은 제조업 강국들이 산업용 전기료를 낮춰주며 자국 기업을 보호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흐름이다. 이제 한국 기업들에게 '싼 전기'는 옛말이 되었다. 전기요금은 더 이상 혜택이 아닌, 통제 불가능한 경영 리스크이자 비용이 되었다.

결국, 살아남는 방법은 하나다. 에너지를 덜 쓰고도 더 많이 생산하는 '고효율 구조'로의 체질 개선이다. 2024년은 대한민국 산업계에 '저렴한 에너지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원년으로 기억될 것이다.


참고 자료:
한전 전력통계월보, 산업통상자원부 보도자료 (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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