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 페이먼츠가 자체 코인 대신 굳이 도지코인을 만지작거리는 진짜 이유. 왜 하필 도지일까?
목차
엑스(X)에 결제 시스템이 도입된다는 떡밥이 돌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도지코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좀 의아하긴 하다. 머스크 성격에 폼나게 '엑스 코인(X Coin)'을 새로 만들면 될 일 아닌가.
아니면 전송 속도도 빠르고 수수료도 싼 최신 스마트 컨트랙트 기반의 블록체인을 채택하는 게 기술적으로 훨씬 나아 보인다.
나도 처음엔 단순한 밈(Meme) 중독자의 기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규제와 시장 상황을 뜯어보니 머스크의 계산이 생각보다 훨씬 영악했다.
자체 코인 발행이 불러올 지옥의 규제 리스크
가장 크고 현실적인 이유는 바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규제 철퇴를 피하기 위해서다.
만약 엑스가 자체 코인을 찍어내는 순간, 그 코인은 하위 테스트(Howey Test)에 걸려 빼박 증권으로 분류될 확률이 매우 높다.
과거 페이스북이 야심 차게 자체 코인 리브라(디엠)를 만들려다 전 세계 정부와 규제 기관의 집중 포화를 맞고 프로젝트를 접은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텔레그램 역시 자체 블록체인 톤(TON)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SEC에 막혀 결국 재단과 선을 긋는 꼼수를 써야만 했다.
머스크는 바보가 아니다. 테슬라 상장 폐지 발언으로 이미 SEC와 지독한 악연을 겪은 그가 굳이 스스로 규제의 불구덩이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
반면 도지코인은 비트코인처럼 작업증명(PoW) 방식을 사용하며, 개발자나 재단의 통제력이 옅어 증권성 시비에서 한결 자유로운 포지션을 점하고 있다.
기술력보다 압도적인 무기인 대중성
블록체인 판을 좀 지켜봤다면 공감하겠지만, 코인 시장에서 기술력이 무조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초당 수만 건을 처리하는 혁신적인 레이어1 코인이 나와도 사람들이 관심을 안 주면 결국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으려면 무엇보다 대중의 인지도와 탄탄한 유동성이 필수적인데, 이 지점에서 도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장난으로 시작된 코인이지만 시가총액 최상위권에 랭크되어 있고, 전 세계 어디서든 쉽게 사고팔 수 있는 인프라가 이미 깔려 있다.
제로 베이스에서 천문학적인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으며 유저를 모아야 하는 새로운 코인과는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는 이야기다.
화폐로서의 의외의 적합성
그렇다면 다른 메이저 알트코인들을 놔두고 왜 도지일까. 오히려 그 멍청할 정도의 단순함이 결제용으로는 장점이 된다.
스마트 컨트랙트가 복잡하게 얽힌 최신 블록체인들은 해킹에 노출되거나 네트워크 자체가 멈춰버리는 셧다운 사태가 종종 발생한다.
도지코인은 그냥 돈을 보내고 받는 단순한 기능에만 충실하다 보니 이런 치명적인 결함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게다가 발행량이 제한된 비트코인과 달리 도지코인은 매년 일정량이 무한 발행되는 인플레이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치가 계속 오를 거라 믿고 꽁꽁 싸매두는 비트코인과 달리, 가치가 희석되니 오히려 사람들이 결제용으로 펑펑 쓰기 좋은 진짜 화폐의 성격을 띠는 셈이다.
일론 머스크의 멈출 수 없는 관종 기질
이 모든 합리적인 이유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일론 머스크라는 인간의 본성을 빼놓고는 이 현상을 완벽히 설명할 수 없다.
그는 과거 페이팔 마피아 출신으로 기존 금융 시스템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며, 동시에 주류 사회를 조롱하고 뒤집는 것을 즐긴다.
세상에서 가장 엄숙하고 진지해야 할 글로벌 송금과 결제 시스템에 엉뚱한 시바견 얼굴이 박힌 밈코인을 도입하는 그림.
이것만큼 머스크의 반골 기질과 자아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는 엔터테인먼트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결국 도지코인은 그에게 규제도 피하고, 초기 구축 비용도 아끼면서, 본인의 밈 제국을 완성할 수 있는 가성비 끝판왕의 장기말인 셈이다.
엑스 페이먼츠의 출범이 다가올수록 머스크가 또 어떤 방식으로 도지코인을 엮어낼지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관전 포인트가 될 듯하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