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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반도체 설계자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시스템 반도체는 쭉 쓰는데 메모리는 강국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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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 뉴스를 보면 항상 등장하는 단골 멘트가 있다. 메모리는 압도적 1등인데 시스템 반도체는 아직 한참 멀었다는 이야기다.
양말과 맞춤 정장의 차이라고?
이 두 반도체를 옷에 비유해 보면 이해하기가 훨씬 쉽다. 메모리 반도체는 누구나 매일 입어야 하는 속옷이나 양말 같은 기본템이다.
반면에 시스템 반도체는 사람마다 용도에 맞춰 입는 맞춤 정장에 가깝다. 속옷은 화려한 디자인보다 튼튼하고 싸게, 그리고 대량으로 잘 뽑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기계는 해외에서 사 오는데 어떻게 우리가 1등일까?
반도체를 찍어내는 가장 핵심적인 고가 장비는 대부분 해외에서 사 온다. 하지만 최고급 오븐을 샀다고 아무나 미슐랭 3스타 빵을 대량으로 구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수백 번의 복잡한 제조 과정에서 불량품을 없애는 '황금 레시피'를 찾는 데 선수들이다. 수백억짜리 장비를 공장 환경에 맞게 한계치까지 튜닝하고 24시간 쉬지 않고 가동한다.
돈 주고 똑같은 기계를 사면 다 따라잡는 거 아닐까?
이쯤 되면 돈 많은 다른 나라가 똑같은 기계를 사서 돌리면 금방 따라잡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도체 공정은 단순히 기계만 산다고 단기간에 복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반도체는 600번이 넘는 세밀한 화학 공정을 거쳐야 완성된다. 그 수많은 과정마다 들어가는 가스의 양, 온도, 미세한 타이밍은 철저한 기업 비밀이다.
이런 변수를 완벽하게 통제해 불량품 없이 칩을 뽑아내는 노하우는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다. 수십 년간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며 실패하고 튜닝해 온 경험치가 그 자체로 거대한 진입 장벽이 된 것이다.
그럼 도면 그리는 실력이 부족해서 밀리는 걸까?
그렇다면 시스템 반도체는 왜 이렇게 점유율이 나오지 않는 걸까. 한국 엔지니어들의 회로 도면 그리는 실력이 떨어져서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미세한 신호를 잡고 꼼꼼하게 회로를 설계하는 개인의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시스템 반도체가 천재 한두 명이 뚝딱 도면을 잘 그린다고 끝나는 시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글로벌 공룡 기업들이 자기들만의 거대한 장난감 블록 생태계를 꽉 잡고 있다. 우리는 그 생태계 안에서 당장 조립해 쓸 수 있는 특수 블록의 종류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설계하는 기술력이 없어서라기보다, 오랫동안 얽히고설켜 만들어진 거대한 비즈니스 생태계의 벽에 부딪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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